등산에 관해서

[스크랩] 노고단 등반

^^고박사 2015. 11. 28. 11:08


 

반야봉(般若峰 1,732m) 전남 구례군, 전라북도 남원시  2007. 7. 27(금)

 

 성삼재- 노고단-노루목-반야봉 -삼도봉-화개재-뱀사골-반선(19.8km, 9시간)

 

저렇게도 불빛들은 살아나는구나

생솔 연기 눈물 글썽이며

검은 치마폭 같은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불빛은 살아나며

산은 눈뜨는구나

어둘수록 눈 비벼 부릎뜬 눈빛만 남아

섬진강물 위에 불송이로 뜨는구나

누이는 매운 눈 비벼 불빛 살려내며

치마폭에 쌓이는 눈물은

강물에 가져다 버린다

누이야 시린 물소리는 더욱 시리게

아침이 올 때까지

너의 허리에 두껍게 감기는구나

이른 아침 어느새

너는 물동이로 얼음을 깨고

물을 퍼오는구나

아무도 모르게

하나 남은 불송이를

물동이에 띄우고

하얀 서릿발을 밟으며

너는 강물을 길어오는구나

참으로 그날이 와

우리 다 모여 굴뚝마다 연기 나고

첫날밤 불을 끌 때까지는

스스로 허리띠를 풀 때까지는

너의 싸움은 너의 정절은

임을 향해 굳구나
             섬진강 2 /
김용택

 

호남고속국도 석곡IC를 벗어난 버스가 곡성을 거쳐서 섬진강 강변길로 들어선 때는, 검은 치마폭같은 어둠이 들녘에 깔리면서 땅거미가 지고 있었다. 비단결을 깔아놓은 듯한 섬진강물이 어둠을 가르며 유유히 흘러내렸다. 한 모서리가 일그러진 열사흘 달이 동녘 하늘에 덩실하게 떠 올랐다.

'저렇게도 불빛들은 살아나는구나/ 생솔 연기 눈물 글썽이며/ 검은 치마폭 같은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불빛은 살아나며/산은 눈뜨는구나 /어둘수록 눈 비벼 부릎뜬 눈빛만 남아 /섬진강물 위에 불송이로 뜨는구나 '

 

구례에서 1박하고 6시 구례 터미널 출발 성삼재행 버스를 탄다. 성삼재를 오르는 버스는 새벽 4시가 첫차다. 두 번 째가 6시, 세 번 째가 8시 20분, 대체로 2시간 간격으로 운행되는데, 구례터미널을 출발하여 화엄사 앞 주차장를 거쳐서 성삼재까지는 약 30분 정도 소요된다. 새벽 첫차는 서울에서 출발한 야간열차 도착 시각에 맞추어 노고단에서 일출을 볼 수 있도록 편성된 것이다. 첫차로 성삼재에 이르는 시각이 대체로 4시 30분, 성삼재에서 노고단까지는 한 시간 정도면 오를 수 있다.

 

오늘은 아내와 함께 느긋한 마음으로 6시 출발 버스를 탄다. 버스는 구례읍을 벗어나 화엄사 앞 주차장에서 일가족을 태우고는 곧장 지리산 자락으로 접어 든다. 뿌연 아침 안개가 차창 밖 가까운 거리에서 시야를 가둬 놓는다. 버스가 천은사 길 갈라지는 삼거리를 지나고 고도를 높여가며 시암재를 향하여 'ㄹ'자로 굽어진 도로를 힘겹게 오른다. 차창 밖으로 펼쳐진 경관은 헬기에서 내려다 보는 듯 아찔하다. 마침내 시암재 휴게소가 눈에 들어오는데, 산의 윗녘으로 오르면서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아침 햇살이 온 산에 눈부시게 쏟아진다. 시암재 휴게소 지나고 산비알 돌아 나가자 성삼재 휴게소다. 구례터미널에서 출발하여 꼬박 30분 만이다. 휴게소 마당에서 바라본 지리산의 산경이 장관이다. 아침 안개 위에 겹겹이 섬처럼 떠 있는 산봉과 능선들, 산줄기는 발 아래서 벋어나가 만복대, 고리봉, 정령치를 넘고 세걸산, 바래봉을 지나 굽이굽이 물결쳐 간다. 반야봉의 검은 실루엣이 하늘 한편을 가리며 우뚝한데 산줄기는 투구봉, 망바위봉, 향로봉으로 솟았다가  저 아랫녘 달궁 골짜기로 산자락을 내린다.

 

산길 접어들자 맑고 시원한 산 기운이 몸과 마음을 쇄락하게 씻어내린다. 그 찌는 듯한 무더위를 지리산의 산행길 내내 느낄 수가 없었다. 종석대(1356) 산자락을 돌아나가 코재에 이르면 화엄사골을 지나 시야가 시원스럽게 열린다. 구례읍은 아침 안개속에 포근히 잠겨 있다.

코재는 화엄사에서 중재를 거쳐 올라온 길의 막바지다. 코가 땅에 닿을 정도로 경사가 가파르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화엄사에서 코재까지는 5.7km, 4시간 30여분 거리다.

 

7시 51분, 노고단 대피소.

유유자적 도로를 따라 1시간 20여분만에 대피소에 이른다. 대피소를 오르는 길목 숲에서는 은방울을 굴리는 듯한 휘파람새의 노랫소리가 들려 온다. 온 산천을 가르며 메아리지는, 야무진 울음소리의 주인공은 너무 놀랍게도 참새의 3분의 1 크기도 안 되는 작은 멧새였다. 녀석은 눈 앞 나뭇가지에 앉아 지나는 사람조차 아랑곳하지 않은 채, 짤막한 텀을 두고, 푸른 숲을 향하여 경쾌한 노랫 소리를 연신 날리고 있었다.

 

노고단 대피소는 휴식하거나 아침 식사를하는 사람들로 시끌벅적하다. 대피소에서 잠깐 숨을 돌리고 지름길로 노고단 언덕에 오른다. 대피소에서 언덕까지는 360m, 10여분 거리다. 맑고 청량한 햇살이 쏟아지는, 노고단 언덕은 사통팔달 시야가 트여 가슴속까지도 시원스럽게 열어준다. 정상으로 향하는 길은 문이 굳게 닫혀있다. 일출 시각에 맞추어 잠시 개방하는 모양이다.

 

노고단(老姑壇1,507m)은 지리산의 서남단에 위치한 봉으로, 천왕봉(天王峰1,915m)까지 주 능선을 이루면서, 반야봉(盤若峰1,732m), 천왕봉(天王峰1,915m)과 함께 지리산의 3대 주봉으로 일컫는다.

 

노고단(老姑壇1,507m)은 신라시대 이래 지리산의 산신인 선도성모(仙桃聖母)를 모시는 남악사가 있었던 곳이다. 선도성모(仙桃聖母)는 천신(天神)의 딸로 , 선도성모(仙桃聖母), 마고(麻古)할미 또는 노고(老姑)라고도 불렀으며, 노고단이라는 명칭은 지리산 신령인 선도성모, 노고(老姑)할미를 모시는 제단에서 유래한 것으로, 이 곳이 민속 신앙의 영지임을 가리키는 말이다.

 

천신의 딸, 마고녀는 때로 시녀들과 함께 지리산에 하강하여 지리산의 아름다운 풍광을 즐겼는데, 어느날 그녀가 산을 둘러보던 중 불도를 닦고 있던 반야를 만나게 된다. 그녀는 반야의 늠름한 모습을 보고는 첫눈에 반하여 사랑을 하게 된다. 그 후, 마침내 마고는 반야와 결혼을 하여 지리산 천왕봉에서 행복한 나날을 보내면서 그 동안에 딸 8명을 낳는다. 그러나 마고녀와 행복한 생활에 빠져 모든 것은 잊고 있던 반야가 어느날 문득 자신의 본분을 깨닫게 되면서, 반야봉으로 득도의 길을 떠나기로 결심을 하게 된다. 그는 마고녀에게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도를 깨우치면 바로 돌아오겠노라 약조를 하고는 반야봉을 향하여 집을 떠난다.

 

그러나 그후 해가 바뀌기를 여러 차례, 한번 떠난 반야는 돌아올 줄을 몰랐다. 마고녀의 머리도 어느새 백발이 성성하게 변해갔다. 그러나 반야의 소식은 감감했다. 마고녀는 당장이라도 반야봉으로 달려가 사랑하는 이를 만나고 싶었지만 참고 또 참으면서 반야가 빨리 도를 깨치기만을 기원하면서 나무껍질을 정성껏 벗겨 남편이 돌아오면 입힐 옷을 만들었다.

 

그러는 사이에, 이제는 세월이 많이 흘러 늘고 기운이 쇠약해진 마고녀가 딸들을 더 이상 부양하기가 힘들어지자 그들을 전국 8도에 한 명씩 내려보내 무당이 되게 하였다. 그리고는 혼자 남아 반야를 기다렸으나 반야는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기다리다 지친 마고녀가 마침내 반야를 원망하며 그를 위해 만들었던 옷을 갈기갈기 찢어 버린 뒤 숨을 거두고 만다.

마고녀가 찢어 버린 옷조각들이 바람에 날리어 반야봉으로 날아갔는데, 그 옷조각이 앉은 자리마다 난이 자라나 아름다운 꽃을 피웠다. 훗날 이것이 '반야봉의 풍란'이 되었다. 이 때부터 반야봉 주변에는 안개와 구름이 자주 끼게 되었는데, 이는 천신이 반야와 마고녀가 만날 수 있도록 다리를 놓아 주고는 사람들이 보지 못하도록 가리기 위해서라고 한다.

천녀가 죽은 후에 천왕봉 아래에 할미당을 세우고 통일신라 때까지 이 곳에서 제사를 지내다가 그후 제사터를 노고단으로 옮겨 왔다 하는데, '늙은 할미의 제사터'라 해서 노고단(老姑壇)이라 일컬었다 한다.

 

오늘은 맑은 햇살속에 골짜기 건너편 반야봉이 덩실하게 솟아 있다. 반야와 노고녀가 만나는 날이 아닌가 보다.

 

8시 14분,

원추리꽃이 노오란 꽃무늬를 이룬 노고단 언덕을 내려와서 울창 숲으로 들어선다. 돼지평전에 이르기까지는 하늘을 가리는 숲터널을 지난다. 터널을 빠져 나오면 관목숲에 미로처럼 길을 뚫어 나간 돼지평전이다. 멧돼지들이 이 곳에서 원추리 뿌리를 캐먹기 위해 자주 출몰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돼지평전에서 남쪽 깊은 계곡이 피아골이고 북편이 심원골이다. 피아골을 지나 시야 멀리 산그림자가 아침 안개속에 실루엣을 그리며 겹겹이 겹쳐진다. 햇살이 목덜미에 따갑게 쏫아지는데, 산비알 푸른 수풀 사이에는 야생화가 지천으로 피어 있다. 노오란 원추리, 동자꽃, 나리꽃, 범부채, 노루오줌, 까지수영, 모싯대, 어수리, 지리터리, 둥근이질풀, 기린초꽃 등 봄은 벌써 지났으나, 지리산은 한창 화원을 이룬다. 지리산의 꽃은 봄부터 가을까지 이어진다.

 

오늘은 산행길에 나선 아이들이 많다. 아빠와 짐을 나누어 진 꼬마도 있고, 친구들과 함께 선생님을 따라 나선 초등 학생들도 있고, 일가족이 모두 산길을 가기도 하는데, 대부분이 종주길이다. 요즘은 지리산을 종주하는 이들이 부쩍 늘어났다.

피아골이 갈라지는 삼거리에서 초등학교 일학년 아들과 함께 쉬고 있는 아빠를 만났는데, 이들 부자도 종주를 한다고 한다. 물이 떨어져서 큰 걱정을 하고 있었다.

아하!, 산행길에서는 물이 무엇보다도 귀중하다. 특히 여름철에는 물이 없이 산행길에 나서면 위험할 수도 있다. 다행스럽게도 지리산은 어머니 품처럼 넉넉하고 따뜻하여 물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1리터 들이 물병 두어 개만 들고 다니면 물이 떨어질 만하면 샘이 있어서 물을 받을 수 있다. 피아골 삼거리에서는 300여m만 더 가면 임걸령 샘터에는 지리산 최고의 물맛을 자랑하는 샘물이 펑펑 쏟아져 나온다. 우리가 산을 사랑하는 것만큼 산도 우리에게 많은 것을 나누어 준다.

 

9시 25분, 임걸령(1320m)

노고단에서 3.2km 지점. 뱀사골 대피소까지 3.3km, 반야봉까지는 2.3km를 남겨 놓고 있다.

키작은 관목숲이 조붓한 분지를 이루는 능선목, 이 곳에도 역시 꽃이 지천으로 피어 있다. 능선목 왼편 아랫쪽으로 유명한 임걸령 샘이다. 언제 누구에게나 시원하고 맛좋은 물을 넉넉하게 나누어 준다. 그늘이 있어 쉬어 가기도 좋고.

 

임걸령(林傑嶺)이란 조선 명종때의 초적 두목 임걸년(林傑年)의 이름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임걸년(林傑年)은 조선조 선조 때 지리산을 무대로 활동했던 초적 두목(草賊頭目)으로 주로 팔도행상의 물건을 일부만 털어 그것을 모아 빈민을 구제한 의적이었다고도 한다. 임란 때 남원 의병장이었던 산서 조경남(山西 趙慶南1570~1637)이 지은 난중잡록(亂中雜錄, 일명 산서야사)에 기록이 전한다.

 

전에는 임걸령에서 곧장 남쪽으로 피아골과 연결되는 등산로가 있었다. 지금의 능선 삼거리길이 개척되기 전에 이용되던 산길이다. 바로 이 옛길이 시작되는 곳에 '황호랑이 막터'라 불리는 곳이 있다. 황호랑이 막터에는 이런 이야기가 전한다.

화엄사 어구 황전리(黃田里) 마을에 성이 황씨(黃氏)인 한 총각이 지리산에서 약초를 캐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는 약초를 캘 수 없는 겨울철에는 나무로 주걱을 만들어 팔기도 했는데, 어느 추운 겨울날, 황총각은 주걱을 깎을 나무를 구하러 지리산으로 들어갔다. 그날은 집에서 기르던 누렁이도 함께 따라 나섰다. 황총각은 반야봉의 나무숲에서 주걱을 한 짐 깎아 집으로 돌아가려고 임걸령까지 내려왔다. 그런데 별안간 눈이 내리면서 길을 잃고 날이 저물고 말았다. 더 이상 길을 갈 수가 없자 그는 임걸령에서 피아골 쪽 길을 내려가 큰 바위벼랑을 의지하여 나무가지를 모아서 간단히 산막을 만들었다. 모닥불을 피워놓고 산막에서 하룻밤을 새우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주인을 따라온 누렁이가 새끼 7마리를 낳았다. 밤이 깊어지자 눈은 멎고 하늘이 맑게 개었다. 그런데, 갑자기 호랑이 한 마리가 나타나 으르렁거리며 주위를 맴돌기 시작했다. 당황한 황총각은 어쩔수 없이 호랑에게 강아지를 먹잇감으로 던져 주었다. 차례로 7마리를 다 던저 주고는 더 이상 줄 것이 없자, 불을 헤치고 불속에서 벌겋게 단 돌덩이를 주걱으로 들어서 호랑이에 던져주며 "옛다, 받아 먹어라!" 했다. 호랑이는 그것도 강아지로 알고는 한입에 덥썩 받아 삼켜 버렸다. 그리고 속이 타들어간 호랑이가 산천이 떠나가게 포효하며 눈 위에 나뒹굴다가 죽어 버리고 말았다. 맨손으로 호랑이를 잡은 황총각의 놀아운 지혜에 탄복한 고을 원님이 큰 상을 내렸고 그에게는 '황호랑이'라는 별명까지 붙여주었다. 그후 지금까지도 이 막터는 '황호랑이 막터'라 불려지고 있다.

 

산길은 큰 오르내림이 없이 오솔길을 타고 노루목까지 이어진다.

 

10시 11분, 노루목(1498m)

노고단에서 4.5km, 천왕봉까지는 21km를 남겨 놓고 있다. 노루목에서 바로 반야봉을 오르는 길이 뚫려 있는데, 정상까지 1km, 왕복 한 시간 거리다.

노루목은 노루가 피아골을 향하여 머리를 들고 있는 형상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남으로 거대한 바위가 벼랑을 떨어뜨리며 솟아 있는데, 바위등에 올라서면 눈 아래 피아골 골짜기에서 솟아 오른 둥실한 육산의 능선이 굼실거리며 벋어나가 멀리 노고단의 언덕까지 이어진다.

잠시 숨을 돌리고 반야봉을 오르는 가파른 오르막길로 들어선다. 숲을 벗어나면 따가운 햇살이 쏟아지는 날등이다. 암반의 비탈에 숨을 헐떡이며, 철계단을 타기도 하면서, 팔부능선쯤 올라서면 뒤편으로 시야가 시원스럽게 열린다. 돌길을 따라 늘여놓은 밧줄이 마침내 정산으로 길을 안내한다. 길가는 야생화 화원이다.

 

11시4분, 반야봉(1732m)

오늘은 시야가 거침없이 시원스럽게 열려 있다. 서편으로는 노고단이 한 걸음에 건너 뛸만큼 가깝게 다가와 있고 시선을 돌리면 북동으로 능선이 벋어나간 끝에 천왕봉이 우뚝하다. 장터목의 대피소까지 시야에 들어 온다.

저기 저쯤에서 마고녀는 반야봉을 바라보면서 얼마나 애타게 반야를 기다렸을까. 얼마나 절절하게 그리움의 한숨을 날렸을까. 반야란 불교의 반야심경에 나오는 말로 '지혜' 또는 '밝음'을 뜻하는 말이다. 지혜, 깨달음을 얻기 위해 사랑하는 아내를 두고 홀로 떠나야 했던 반야, 반야의 자취는 오늘 산정을 지키는 검은 빗돌에서 밖에는  찾아 볼 길이 없다.

 

반야봉에서 내려오는 도중에 왼편으로 길이 갈라지면서 삼거리를 이루는데, 곧장 내려가면 노루목이고, 왼편길을 따라 내려가면 삼도봉 직전에서 큰 길과 만난다. 만나는 지점에서 5분 정도만 가면 삼도봉이다.

 

12시 11분, 삼도봉(1555m)

봉이라기 보다는 반야봉 아래 길목의 한 지점이다.  경남, 전남, 전북 삼도가 만나는 지점이다. 큰 암반 위에 삼도의 방향에 따라 도명을 쓴 삼각뿔의 표지물이 세워져 있다.

도봉을 내려서면 화개재로 가는 긴 계단 길이다. 연이어 이어진 계단이 551개나 된다고 하는데 사실인지는 모르겠다. 삼도봉에서 화개재까지 내리막길 800여m의 거의 절반 이상이 계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12시 32분, 화개재.

노고단에서 6.3km, 뱀사골을 통하여 반선까지는 9.2km.

화개재에서 천왕봉까지는 19.2km, 토끼봉과 명선봉을 넘어 연하천 대피소까지는 4.2km, 약 2시간 반 거리다.

 

화개재는 장터목과 함께 지리산 능선에 있던 장터로, 하동 땅 화개에서 연동골을 따라 올라온 해산물들이 뱀사골을 따라 올라온 삼베와 산나물과 물물교환 했던 장소다. 연동골은 골짜기 어귀 목통마을 이름을 따서 목통골이라고도 부르는데, 들머리 목통마을은 예로부터 물레방앗간이 있어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모여 들었던 큰 마을이었다.

 

화개재에서 200여m를 내려오면 뱀사골 산장이다. 화개재까지 산행한 사람들이 쉬어가면서 물을 얻기 위해 많이 이용한다. 여기서부터 반선에 이르기까지 장장 9km가 넘는 긴 계곡이 뱀사골이다. 뱀사골은 경관이 참으로아름다운 곳이다.

 

12시 59분, 뱀사골 대피소

뱀사골 대피소는 협소하고 시설이 열악하지만 물이 넉넉한 곳이다.

잠시 쉬고는 골짜기를 따라 뱀사골로 들어선다. 골짜기 어구에 산수국이 무리를 지어 아름답게 피어 있다. 뱀사골의 위쪽으로는 돌너덜길이 계속되는데, 뾰족한 돌들이 날을 세우며 서 있어 여간 험한 것이 아니다. 발길 떼기가 조심스럽다.

 

뱀사골은 반야봉, 삼도봉, 토끼봉, 명선봉 사이 울창한 수림에서 비롯된 물줄기가 골짜기로 모여들면서 사철 수량의 변화가 없이 기암괴석의 골짜기에 수정빛 담소와 폭포를 이루면서 흘러내린다. 오룡대, 뱀소, 병풍소, 제승대, 간장소 등 유명 무명의 폭포에 맑은 물줄기가 뛰어내리며 먹빛 담소가 그림처럼 펼쳐진다.

 

 옛날 뱀사골 입구에 송림사라는 절이 있었는데 매년 칠월 칠석날 밤이되면 이절 주지 스님이 사라져서는 돌아 오지 않았다. 사람들은 스님이 부처님이 되어 승천했다고 믿었다. 그런데, 서산대사가 이 소문을 듣고는 어느해 칠석날이 되자 주지스님의 장삼 속에 비상(극약)주머니를 몰래 달아 주었다. 주지스님이 밤새 독경을 하였는데, 새벽녘이 되자 하늘이 갈라지는 듯한 소리가 나며 큰 뱀이 송림사를 지나 계곡을 거슬러 올라 갔다. 서산대사가 뱀을 따라 올라 갔는데, 뱀소쯤 이르러 보니 큰 이무기 한 마리가 죽어 있었다. 사람들을 시켜 이무기의 배를 갈라보니, 뱃속에 주지스님이 죽어 있었다. 그 후 뱀이 죽은 골짜기라 하여 뱀사(死)골이라고 하였다 한다. 그리고 끝내 용으로 승천하지 못한 이무기를 '반쯤 신선이 됐다' 하여 '반선(半仙)'이라 불렀다는데, 후에 이 곳 지명인 반선(伴仙)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송림사 절터는 지금 전적 기념관이 들어서 있는 곳이다.

 

혹자는, 옛날 석실(石室) 부근에 배암사라는 절이 있어서 뱀사골이 됐다는 얘기도 있다.

뱀사골에 있는 간장소는 옛날 화개재를 넘나들며 소금 장사를 했던 운봉 소금장수의 얘기가 전한다. 어느날 화개장터에서 소금을 사서 화개재를 넘어오던 소금장수가 너무 지친 나머지 발을 헛디뎌 소금과 함께 웅덩이에 빠져 죽었다고 한다. 그 후로 이 웅덩이의 물이 간장처럼 짜다고 해 간장소라 불렀다 하는데, 아마도 물빛이 간장과 같이 검푸른 빛이라서 붙여진 이름인 듯하다. 화개재에서 삼도봉을 거쳐 반야봉으로 오르는 길목 왼쪽에 이름모를 무덤이 하나 있는데 이 무덤이 운봉 소금장수의 무덤이라는 얘기도 전한다.

 

골짜기에 걸린 다리를 몇 차례나 건느면서 물길 따라 골짜기를 내려 온다.

2시 32분, 간장소,

2시 52분, 제승대, 반선까지 5km를 남겨 놓고 있다.

3시 12분, 병소, 물길이 병목과 같다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4시 9분, 탁용소(濯龍沼), 큰 뱀이 목욕을 하고 용이 돼서 승천 했다고 한다.

4시 15분, 요룡대(搖龍臺), 용이 머리를 흔들며 승천하는 모습이라 한다.

4시 40분, 드디어 반선, 뱀사골 입구에서 배낭을 벗고, 버스를 기다린다. 멀고 먼 여정의 끝, 온 몸이 땀으로 젖어 든다.

남원으로 나가는 버스가 한 시간 간격으로 출발한다.

노고단 언덕

 

 

반야봉

 

 

뱀사골

 

 

돼지 평전의 조망

 

 

돼지 평전의 기린초

 

 

코재(화엄사 길 삼거리)

 

 

노고단

 

 

피아골 삼거리의 범부채

 

반야봉 오르막

 

반야봉 오르막길

 

반야봉 산정

 

반야봉의 원추리

 

삼도봉의 표지

 

반야봉 하산길의 비비추

 

삼도봉에서 화개재로 가는 계단

 

화개재

 

화개재에서 뱀사골로

 

뱀사골 대피소 아래 산수국

 

 

뱀사골 간장소

 

뱀사골

 

뱀사골

 

 


출처 : 빨 간 태 양
글쓴이 : 빨간태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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