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일기

[스크랩] 안양 삼성산(관악역-삼성산-서울대) 산행기-2

^^고박사 2013. 3. 5. 00:40

 

                       안양 삼성산(관악역-삼성산-서울대) 산행기-2

                            관악역-삼성산 국기봉-삼성산-서울대


   삼성산(三聖山)은 별로 높지 않은 해발 477m의 산이지만 오르는 코스는 다양하다. 그래서 안양 예술공원 쪽에서 안양사를 거쳐 올라가봤으므로 이번엔 관악역에서 학우봉 주능선을 따라 올라가기로 했다.

  

   1호선 전철 관악역 ②번 출구로 나가서 정면으로 30여m 진행하면 왕복 10차선 경수산업도로를 만난다. 그러면 왼편 지하도 입구로 내려가서 이 도로를 건너 맞은편으로 올라가면 거기가 바로 석수1동 주민센터 앞이다.

   

   주민센터 앞에서 오른편(남동방향)으로 산업도로를 따라 100여m(다리를 건너) 가면 삼성초교 정문 앞을 통과하고, 이어서 200여m 더 진행하면 왼편으로 삼성산으로 올라가는 들머리인 계단 길이 나타난다. 관악역에서 10여분 거리이다.

 

 

   이 길로 올라가면 잘 정리된 몇 기의 묘소들이 있는 지역을 지나 편안한 능선 길이 이어진다. 그리하여 들머리에서 10여분 올라가면 안양예술공원 입구 버스정류장 쪽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고, 다시 10여분 진행하면 길 가운데에 글씨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낡은 삼각점이 있다. 왜 이런 곳에 삼각점을 설치한 것인지 이해가 안 된다.

 

 

 

   이후 30여분, 들머리에서 50여분 올라가면 다시 안양예술공원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난다. 이 길은 안양역 ①번 출구 앞에서 안양예술공원으로 가는 2번 마을버스의 종점인 공영주차장 쪽에서 올라오는 그 길이다. 거기 이정표에 ‘관악역 1.64km, 안양예술공원주차장 1.39km, 제2전망대 0.23km’라 적혀 있다.

   

   그리고 10여분이면 전망대를 조성한 데크 쉼터라는 곳에 올라서고, 이곳에서 바라보는 학우봉 암릉이 아주 우람하고 멋지다.

 

 

 

 

 

   거기서 10여분이면 나무계단을 지나 제2전망대에 올라선다. 이후 학우봉(369m) 정상을 우회해서 20~30분 진행하면 삼막사고개 4거리에 닿는다. 이곳은 삼막사, 염불암, 국기봉, 학우봉으로 이어지는 길이 갈라지는 4거리여서 항상 사람들로 붐빈다.

 

   삼막사 4거리에서 10여분이면 삼막사에 닿는다. 그러니 삼성초교 옆 들머리에서 1시간 30분 정도 걸리는 셈이다. 삼막사에서 잠시 쉬었다가 칠성각 쪽으로 향하기 위해 오른편 잘 단장된 돌계단 길로 2~3분 올라가면 왼편에 삼귀자가 있다. 올 때마다 신기하게 느껴지는 글씨이다.

 


<삼귀자(三龜字)>---비지정문화재


   삼막사 동편의 직사각형 바위면을 깎아 거북을 형상하는 상형문자 같은 ‘거북 귀(龜)’ 글자가 세 가지 형태로 새겨져 있다. 이 글자들은 조선 후기에 종두법을 실시한 지석영(池錫永)의 형 지운영(池雲英, 1852~1935)이 이 부근 백련암에 은거해 있을 때 써서 새긴 것이라고 하는데, 백련암지는 어디쯤인지 짐작이 안 된다. 동생은 서양의학을 선도했고, 형은 동양철학에 심오한 풍운아여서 형제간에도 가는 길이 달랐던 모양이다.  

   

   거북 귀(龜)자를 각기 다르게, 그것도 아주 특이하게 표현하고 있어서 그 속에 많은 뜻이 숨어 있을 것 같은데, 비의 우측에 “관음몽수장수영자(觀音夢授長壽靈字)”, 좌측에 “불기2947년 경신중양불제자지운영경서(佛紀 二千九百四十七年庚申重陽佛弟子池雲英敬書)”란 명문이 있어 지운영이 꿈에 관음보살을 본 후 1920년에 새긴 것으로 돼 있다.

   지운영은 조선 말기에 시 ‧ 서 ‧ 화(詩書畵)의 삼절로 불렸을 만큼 뛰어난 서화가였을 뿐만 아니라 황실 사진을 찍을 정도의 사진작가이기도 했고, 정치가이기도 했던 인물이다. 그런가 하면 고종과 사대당 정부의 밀명에 의해 개화파인 김옥균, 박영효 등을 암살하기 위해 일본에 특파될 만큼 활동적이기도 했다.

   그는 정부로부터 현상금을 미리 받아가지고 개화파 암살의 밀명을 띠고 도일했으나 오히려 그들과 어울려 놀다가 그냥 돌아와서는 죽일 기회가 없었다고 보고한 괴짜였다. 헌데 그런 사실이 들통 나면서 고문을 당하고 귀양을 가야 했다.

   그는 유배생활을 한 후에는 사회활동을 접고, 삼막사 위에 백련암을 지어 기거하면서 작품 활동에 전념했으며, 그럴 당시 삼귀자란 바위글씨를 남겼다. 그런 그의 파란만장한 생애를 함축한 글씨가 바로 이 삼귀자인 것 같다. 거북 귀(龜)자를 상형문자, 주술적 문자, 특이한 한문체로 다양하게 표현했다.

   오른쪽 가장 자리에 있는 龜자는 거북의 원형을 그대로 살린 한문이며, 예서체 또는 인서체(印書體)라고 한다.

   가운데 글자는 주술적인 형식으로 쓴 글자이다. 거북의 등짝 가운데에 꼬리부분에서부터 입이 있는 머리 부분으로 직선이 그어져, 좌우로 구분을 했다. 이는 요가 수행에서 흔히 일컬어지는 쿤달리니(Kundalini)와 비슷하다. 즉, 척추선을 통해서 상승하는, 인간 육체 안에 내재된 에너지요 신성의 근원인 쿤달리니를 상징하는 것 같다. 그리고 시작점과 끝나는 점이 없고, 단절된 곳도 없이 연이어 쓴(그린) 글씨로 인해 생긴 13 개의 면마다 마치 인간의 혈맥과 같은 점이 하나씩 찍혀 있다.

   마지막 맨 왼쪽의 도형문자 역시 한문의 거북 龜자이지만, 이 글씨는 아주 날카롭게 벼락 치는 모양으로 썼(그렸)다. 온 몸을 관통하는 기(氣)의 흐름을 상징하는 글씨라 추정된다. 거북은 오래 사는 장수의 상징이지만 이 세 글자 안에는 그 외에도 많은 의미가 축소돼 갈무리 된 듯한 생각이 든다.

   지운영은 이곳 말고도 경북 의성 고운사(高雲寺)에 있는 조선 후기 고승인 수월대선사(水月大禪師)의 행적비를 쓰기도 했다. 이런 점을 미루어 봐서 불교계 내에 그의 입지가 상당했음이 짐작된다.


   삼귀자를 보고, 계속해서 5분 정도 올라가면 칠성각 길과 상불암 가는 길이 갈라지는 곳에 괴목으로 다듬은 이정표가 서 있다. 거기서 칠성각까지 50m, 1~2분이면 되고, 정상으로 바로 향하려면 이곳에서 상불암 쪽으로 올라가면 된다.

  

   헌데 칠성각으로 이어지는 돌계단 길을 올라가면서 느껴지는 것은 이 긴 돌길을 조성하느라 수십억 원의 돈이 들었을 텐데, 굳이 이렇게 막대한 돈을 들여 이렇게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돈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넘쳐서 이런 짓을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다.

   이런 일에 투자할 것이라면 차라리 빈민구제나 어려운 이웃을 돕는 게 보시바라밀에 가까이 가는 게 아닌가. 우리나라 불교는 불교 본질을 벗어나서 지나치게 외양의 치장에 기우치는 것 같다. 이런 유위(有爲)의 행위는 부처님의 뜻에는 완전히 배치된 타락이다.

   

   그리고 저 시내에서 삼막사 절까지 길게 이어진 그 차도는 자연훼손이 아닌가. 그런데 왜 승려들은 사패산 터널을 못 뚫게, 천성산에 도룡뇽 타령을 하며 터널을 못 뚫게 과격한 행동을 일삼아서 막대한 국고를 낭비하게 했는가. 온 천하가 자연훼손에 반대해도 불교계만은 할 말이 없어야 한다. 북한산의 그 많은 절들에 찻길이 없는 곳이 없을 정도로 산을 마구 훼손하면서 무슨 면목으로 자연보호를 외치는지 참으로 낯 두꺼운 이율배반이다. 


<삼막사 칠성각 마애삼존불(磨崖三尊佛)>---경기도 유형문화재 제94호

 


   칠성각 마애불은 자연암벽에 감실을 만들고, 거기에 부조한 치성광여래(熾盛光如來) 삼존불을 새긴 것으로 조선 후기를 대표할 만한 걸작이다. 주존인 북극성을 상징하는 치성광여래는 율동감 있게 묘사해 미소 짓고 있으며 중후하고 자비스러운 인상을 풍긴다. 좌우 협시인 일광보살, 월광보살은 각각 연화대 위에 합장한 모습이고, 머리에는 관을 쓰고 있다. 이 삼존불은 얼굴이나 상체의 활달한 부조로 생동감이 넘쳐 조선 불상에서는 파격적인 수법의 수작이다.

   이 불상 아래 건륭 28년(영조 39년, 1763)이라는 명문이 있어 조선 후기 불교조각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며, 칠성신앙과 다산신앙이 결합한 불교와 민간신앙의 결합상태를 매우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자료이기도 하다.


<남녀근석(男女根石)>---경기도 민속자료 제3호

 

  

   삼막사 칠성각 앞에 있는 자연 형태의 남근석과 여근석인데, 신라 문무왕 17년(677) 원효대사가 삼막사를 창건하기 전부터 이 바위는 토속신앙의 대상으로 숭배됐다고 하며,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자손 번창을 위해 이 돌에다 치성을 드린다고 한다.

   

   이 바위를 만지면서 자식 두기를 원하고 출산과 일가의 번영과 수명장수를 빌면 효험이 있다고 전하며, 4월 초 파일과 칠월칠석날 등 이름 있는 날에는 경향각지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촛불과 삼색과실 등을 차려놓고 빈다. 천연 그대로의 돌인 남근의 높이는 150cm, 여근의 높이는 110cm이다.

   이러한 성기숭배 사상은 수렵, 채집의 풍속과 풍농, 풍어, 다산과 무병장수 신앙이 하나를 이루어, 선사시대부터 행해져 왔으며 고려, 조선시대는 물론 현재까지도 무속, 풍수신앙, 동제, 미륵신앙 속에 어우러져 이어지고 있다. 정보화시대라는 말이 무색해지는 원시적인 신앙 형태라 하겠다.


   칠성각에서 정상을 향하려면 도로 이정표가 서 있는 상불암 갈림길로 내려가서 올라가는 것이 정석이지만 되돌아 내려가기 싫으면 칠성각 뒤편 길로 올라가면 갈림길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난다. 이후 제법 가파른 길을 10여분 올라가면 삼성산 주능선에 올라선다. 거기서 국기봉 정상은 오른편 200m 지점이어서 삼성산과 무너미고개로 향하려면 정상에 갔다가 도로 이곳으로 되돌아와야 한다.

 

   국기봉 정상으로 가기 위해 오른편으로 2~3분 가면 널따란 마당바위가 있다. 그곳에서 정상을 향하는 길은 좌우 양쪽으로 우회로가 있다. 어느 쪽으로 가도 되지만 오른편 길은 흙길이고, 왼편 길은 암릉 길이다. 따라서 오른편 길로 정상을 향했다가 왼편 길로 나오면 좋을 것 같다. 

 

     삼성산 국기봉(477m) 정상은 공간이 좁아서 주말이면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여서 기념사진 찍기도 번거롭지만 시야가 활짝 열려서 사방이 다 보인다. 날씨가 화창할 때는 저 멀리 인천 송도신도시까지도 보인다고 한다.

   

   국기봉에서 전망을 즐기다가 다시 삼성산을 향하면 국기봉을 내려선 이후 호젓한 길이 한동안 이어지면서 갖가지 형상의 암릉들이 전시장을 방불케 해 눈을 즐겁게 한다.

 

 

 

   

   헌데 김포공항에 내리는 여객기의 하강 코스가 삼성산 위를 지나는 것 같다. 김포공항을 이용하는 승객이 그렇게도 많은가. 정오 무렵에는 하강하기 위해 고도를 낮추는 항공기가 쉼 없이 지나간다. 아마 5분이 멀다하고 1대씩 지나가는 것 같다.

   

   비행기를 쳐다보랴, 주변을 살피랴, 형형색색의 바위 사진을 찍으며 가노라면 삼성산 국기봉에서 30여분 걸려서 삼성산 통신탑 턱밑에 닿고, 거기서 좌우 양쪽으로 진행하는 길이 있다. 지형이 흡사 청계산 정상처럼 생겨서 왼편 길은 오르내림이 심하지만 정상의 통신탑 울타리를 따라 진행되고, 오른편 길은 쉽게 진행된다.

   

   삼성산 정상은 울타리를 친 통신탑 지역이지만 북쪽 정상부의 컨테이너 박스 위에 전망대를 설치해 놓아서 조망을 즐길 수 있게 돼 있다. 거기 올라가면 관악산이 정면으로 보이고, 표지판에 ‘삼성산 481m’라 적혀 있다.

   삼성산 공원 관리소 측에서 설치한 지도엔 455m라고 적혀 있는데, 이곳엔 481m이다. 헌데 눈대중으로 짐작하기에는 남쪽 국기봉보다 이곳이 다소 낮아보여서 455m가 맞는 것 같다.

 

   아무튼 삼성산 정상에서 무너미고개 쪽으로 하산하려면 일단 북쪽으로 이어지는 차도를 따라 2~3분 내려가면서 차도가 왼편으로 굽으러진 후 몇 발자국 진행하면 그곳에서 오른편으로 내려가는 오솔길이 보인다. 그쪽으로 1~2분 내려가면 공터에 ‘K44’라는 119표지판이 서 있고, 그 표지판 위에 무너미고개 방향을 가리키는 표지판이 붙어 있다.

 

   무너미고개로 가려면 그쪽으로 진행하면 되는데, 무너미고개로 이어지는 능선 길은 상당히 험한 암릉지대라서 노약자는 피하는 것이 좋다.

   노약자가 있을 경우엔 ‘K44’ 표지판에서 무너미고개 방향으로 100여m 진행하면 왼편 철쭉 군락지 사이로 내려가는 오솔길이 보인다. 그 계곡 길로 내려가면 편하게 내려갈 수 있다. 헌데 삼성산에도 이렇게 넓은 철쭉 군락지가 있을 줄이야, 줄곧 철쭉 군락지 사이로 20여분 내려가면 무너미고개 아래 119 표지판 ‘K41’이 서 있는 약수터삼거리에 닿는다.

 

 

   거기 이정표에 ‘무너미고개 0.4km, 삼성산 1.8km, 제4야영장 0.7km, 호수공원 2.1km’라 적혀 있다.

   거기서 호수공원을 거쳐 관악산 입구까지 내려가는 길이 꽤 지루하다. 2.1km라 하지만 1시간 정도 걸린다. 이렇게 해서 관악역에서 삼막사-삼성산을 거쳐 서울대 쪽으로 내려가려면 4~5시간 걸려서 하루해를 보람 있게 보낼 수 있다.

 

 

   ---너무 속도전을 하듯이 산행을 하지 맙시다. 힘만 들고, 재미도 없고, 자칫 스트레스를 받을 수도 있어서 역효과입니다. 천천히 사방을 관상하며, 여유를 가진 산행을 합시다. 그렇게 하면 육체적 건강뿐만 아니라 정신 건강에도 이롭답니다.---


2012, 3, 13(화요일) 둘 산악회  아미산(이덕호)



출처 : amisan511
글쓴이 : 아미산 원글보기
메모 :